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일제강점기노래13

학도가, 가사, 1910년 학도가(學徒歌) 작사 최남선? 작곡 오노우메카와 노래 동경 유학생 발표 1910년즈음 이 노래는 방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 동경으로 돌아가려는 유학생들이 경성역(서울역)에서 모여 함께 불렀다고 전해진다. 학도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노래이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시작을 이 곡으로 보기도 한다. 곡은 일본인 오노우메카와가 작곡한 철도창가이다. 87년 이전까지 일본 국철에서 사용된 차내 방송용이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노래를 가지고 교회에서는 성경목록가를 만들었다고 하니... 당시 꽤나 유명한 멜로디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제목과 비슷한 가사를 가진 김인식(金仁湜)의 도 있다. 가사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역사의 태동을 들어 보아라 소년은 이로에 학난성하니 일촌 광.. 2021. 5. 4.
광복가, 가사, 1919년 광복가 작사 미상 작곡 미상 노래 대한제국 국민 발표 1919년 는 삼일운동이 일어났단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이다. 1919년 2월 8일 동경에서 유학을 하던 유학생 600여명이 모여 2.8독립선언을 한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3.1운동까지 이어진다. 삼일운동이 일어나도록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는 김마리아이다.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였고, 김마이라도 붙잡혀 3년 동안 옥살이를 한다. 이 노래는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나라는 뜨거운 정신이 담겨 있다. 가사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서 잃었던 내 조국과 너의 자유를 원수의 손에서 피로 찾아라 한산(漢山)의 우로(雨露) 받은 송백까지도 무덤 속 누워 있는 혼령까지도 노소를 막론하고 남(男)이나 여(女)나 어린아이까지라도 일어나거.. 2021. 5. 4.
충정가, 가사, 1910년 충정가 작사 불명 작곡 불명 노래 대한제국사람 국민 발표 1910년 충정가는 양양가 또는 초로가 불리는 이 노래는 조선이 일제에 넘어가던 시절 의병으로 활동했던 이들이 불렀던 노래이다. 조선통감부는 1907년 일제에 의해 해체된다. 이 노래는 그 때부터 시작된다. 1948년 해방후 국방경비대가 창설되면서 군가가 되었다. 가사 인생의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고 조국의 앞날은 양양(襄陽)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 2021. 5. 4.
송 안중근 선생, 가사, 1910년 송 안중근 선생 작가 향산 작곡 향산 노래 대한제국 국민 발표 1910년 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은 노래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 하얼빈역 광장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을 노래한 것이다. 가사 사나이 이 세상에 한 번 낫다 죽는 것은 긴 바람 큰소리로 구수(나라원수)의 목을 베혀 찌르릉 산천이 울도록 한 웃음 치더라니 용의 눈 부릅뜨고 삼천수운 몰아다가 합이빈(하얼빈) 흰 날 아래 마른 벽력 치단 말가 변합에 죄지은 놈들 혼비백산하여라 어허 장하시고 천하에 떨친 열의 장천이 느끼시사 그 갚음이 크시어라 삼천리 큰 종 울리워 나라 다시 크더라 당시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뜨거운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 권력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 2021. 5. 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