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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가요67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가사, 최희준, 1961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작사 작곡 노래 최희준 발표 1961년 회사 가사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 저만 데이트에 좀 늦게가면 하루종일 말도 안해 what shall I do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강짜새암이 이만 저만 젊은 여자와 인사만 해도 누구냐고 꼬치 고치 oh help me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서비스가 이만 저만 춥지않느냐 뭐 먹겠느냐 털어주고 닦아주고 oh thank you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서비스가 이만 저만 춥지않느냐 뭐 먹겠느냐 털어주고 닦아주고 oh thank you 아~ 남들은 몰라요 아 올드 미스 우리 애인 No.1 No.1 2021. 4. 29.
베사메 무초, 현인, 1960년 베사메 무초 작사 현동주 작곡 번안곡 노래 현인 발표 1960년 회사 우스개 소리지만 베사메무초의 뜻을 알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베사페 무초는 스페인어로 이기 때문이다. 현인에 의해 불려진 이곡은 키스해 주세요로 번역하지 않고 곧바로 베사메 무초라는 스페인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베사메무초는 스페인의 엔리크 그라나도스가 화가인 고야의 그림에어 영감을 받아 작시한 것이다. 1941년 멕시코 할리스코에 태어난 여류 작가였던 콘수엘로 바라스케스가 편곡하여 불려진다. 그러다 1943년 서니 스카일러가 영어로 번역하여 발표한다. 아마 이로인해 우리나라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베사메 무초, 언제든 당신에게 입맞춤할 때마다 아주 멋진 음악이 들리지요. 조 ㅁ더 입맞춤 해주세요 나를 안아 주세요. ‘그대.. 2021. 4. 28.
영산포 아가씨, 이미자, 1969 영산포 아가씨 작사 반야월 작곡 고봉산 노래 이미자 발표 1965/1969 영산포는 현재의 나주시를 말한다.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 가마골의 용소에서 발원하여 광주시와 나주를 거쳐 목포에서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주만을 영산포로 부른다. 영산포는 수운이 적당했다. 상류로는 배가 운행하기 힘들었기에 영산포까지가 배들이 운행하기 적합했다. 목포가 개항하면서 동력선이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드나들면서 영산포를 호황을 이루었다. 육지 도로가 썩 좋지 않았던 시절 배는 훌륭한 이동 수단이었다. 덕분에 영산포는 목포와 내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구의 기능은 1960년대로 막을 내린다. 철도와 도로가 점점 발달하면서 포구의 기능이 상실한 탓도 있지만 상류로부터 밀려오는 토.. 2021.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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