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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강점기가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by Ἀμφίων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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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우리나라 전래민요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1894년에 있었던 동학 농민 운동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군은 파랑색 옷을 입었고, 전봉준은 녹두장군으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녹두밭은 전봉준을 뜻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일설에서는 파랑새가 청나라와 일본군과 패정(悖政)을 자행한 봉건 탐관오리들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청포장수는 당연히 백성들을 상징하겠죠.

 

이 노래는 어른보다는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많이 불렀습니다. 당시에 소문을 내기 위해 어린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옵니다. 자 이제 노래를 들어봅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녹두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하절인 줄 알았으냐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

 

이 노래를 우리나라 최초의 창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885년 전래된 개신교 찬미가의 영향을 받아 판소리와 창, 민요에서 대중적인 성향을 띠는 노래가 파생한 것입니다. 이후에 창가는 전통적인 국악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유행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1894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납니다. 군수 조병갑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백성들을 착취합니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낫과 죽창을 들고 항거합니다. 조선이 망해갈 즈음 온갖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이 폭정과 비리를 일삼게 됩니다.

 

전봉준은 전북 고창 공음면 구수마을에서 드디어 사람들을 모으고 봉기를 시작합니다. 봉기 선언문을 낭독하며 일어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일본군이 관군과 합세하면서 괴멸되게 됩니다. 결국 전봉준은 1894년 12월 2일 순창에서 옛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됩니다. 1895년 4월 24일 의금부에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이때 충정도, 전라도 경상도가 중심이 되어 부른 노래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입니다. 지역마다 음과 가사가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 뭣 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릇푸릇

하절인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이 되었구나

 

이 노래도 동학군이 부른 노래이다. 시기적으로 겨울이 아니었지만 당시 상황이 너무나 혹독하여 나온 표현이 아닐까 싶다.

 

아랫녘 새야 웃녘 새야

전주 고부의 녹두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두류박 딱딱 우여

 

새는 동학 농민군이고, 동학군은 윗녘, 아랫녘의 혁명군은 전주, 고부에 머무르지 말고 서둘러 진격하라는 말이디ㅏ. 여기서 두류산은 지리산을 말한다. 지리산 쪽에서 관군이 쳐들어 온다는 뜻의 암호 같은 노래다.

 

녹두야 녹두야 전녹두야

그 많은 군사 어디에 두고

서울 군사에게 잡혀갔는가

 

전봉준이 잡혀 가면서 남은 동학군들이 부른 노래이다. 여기서 서울군사는 근대 신식무기로 부장한 일본군을 뜻한다. 전봉준은 일본군으로부터 조선 조정에 인도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41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다. 사람들은 슬피 울려 또 다른 노래를 불었다.

 

충청도라 하늘이 울어

지도섬에 비 묻었네

그 비가 비 아니라

억만 군사 눈물일세

 

 

포레스텔라(FORESTELLA)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 OST

  충북 지방에서 부르는 <새야새야 파랑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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