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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노래

한국 민중가요의 역사

by Ἀμφίων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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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중가요의 역사

이 글은 정경은의 <한국 현대 민중 가요사>(서정시학)을 저의 자의대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추가 증보한 것임을 밝힙니다. 구분 시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방 전-1950년대
1960년대-1970년대
1980년-1987년
1988년-현재


개인적으로 저자의 구분 시기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따로 구분하고 차라리 1950년대만을 다루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가요사에 대해 전문가가가 아니기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시절과 해항 후까지 다룬 것은 약간 의아합니다. 하여튼 가요사에 대한 부분에 제가 더 공부해서 정리하기로 하고 저는 이 책의 구분법을 그대로 차용합니다.

 

성냥공장 아가씨


1. 해방 전-1950년대


해방을 전후로 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의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해방 후는 이념전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진 상태로 소위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반공주의와 빨치산 투쟁이 일어납니다. 이 당시는 대체는 친일파는 미군정과 미군정의 힘을 입은 이승만 정권들과 손을 잡습니다. 이들은 미군정 하에서 군인, 경찰, 공무원 등에 대거 투입되면서 청산되어야 할 대상에서 오히려 군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현대의 경찰과 당시의 경찰은 이런 부분에서 있어서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민중가요의 형성기로 광복군과 독립군의 항일투쟁 노래, 지주에 항거한 노래, 빨치산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민요가 가장 많이 불렸으며, 순수한 한국창작 노래이기보다는 외국곡에 가사만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 대중가요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1950년은 한국전쟁(6.25)가 일어납니다. 그로인해 전쟁과 관련된 가요가 대거 만들어집니다.


2. 1960년대-1970년대

 

1960년은 한국 본격적인 도시화와 근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정희 정권이 강제하고 착취하는 것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960년대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창조해야할 상황이었습니다. 1970년 전태일 분실 사건이 일어나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죽음까지 상황입니다. 근대화는 곧 공업화였기 때문에  도시화와 더불어 일어난 공업화는 개인의 인권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노동자를 부품처럼 이용하려는 자본가와의 물가피한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저항가요의 본격적인 시각은 이때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김민기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3. 1980년-1987년

 

1980년은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납니다. 박정희가 물러났지만 더 교활한 전두환이 등장하여  나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80년대 이전이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결하는 구도였다면 80년부터는 모든 국민들과 군부세력간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집니다. 또한 그 이전엔 희미했던 지역 감정이 뚜렷이 생겨납니다. 경상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군부세력은 경상도에게 특권을 부여하면서 자신들의 텃밭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박정희 때 이미 많은 부분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노골적이지는 않았습니다.


4. 1988년-현재


1988년에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정경은은 이 시기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경제부정적이며 노동투쟁적인 성격의 노동가요 시기라고 평가한다. 이 평가는 굉장히 중요한데 실제로 90년에 들어서면서 사상적으로 다채로운 변화가 일어나며 근대적 정신이 아닌 현대적 정신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고, 이전에 갖지 못한 풍요로 인해 극단적 대립구도가 약화됩니다. 당연히 대중적인 저항정신은 희미해지고 다시 노동가들에게 축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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