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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가요

시골버스 여차장 심연옥, 1956년

by Ἀμφίων 2021.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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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버스 여차장 심연옥


작사 윤부길
작곡 한복남
노래 심연옥
발표 1956년

*당시 버스는 뻐스로 표기되어 있고, 그렇게 불렀다.

 

심연옥이 부르는 <시골버스 여차장>

 

금잔디가 부르는 <시골버스 여차장>

 

 

신미래가 부르는 <시골버스 여차장>



1.오라이 스톱 마즈막 버습니다
빨리빨리 타세요 차례차례로
나는야 시골버스 차장이구요
그이는 제대장병 운전수야요
뿌붕뿡 덜컹덜컹 다이아가 빵구
시골버스 여차장은 수집구만유.

2.오라이 스톱 두 시간 연착이오
차속에서 여손님 옥동자 낳소
황소가 길을 막아 늦은데다가
빵구로 마차시켜 끌고 왔지요
뿌붕뿡 덜컹덜컹 기어가는 차지만
시골버스 여차장은 친절하당께.

3.오라이 스톱 읍내 가는 버습니다
멀미하는 할머니 창 옆에 가소
친정가는 떡동구리 선반에 나요
족도리 사모관대 신랑각시는
뿌붕뿡 덜컹덜컹 흔들리면 싱글벙글
시골버스 여차장은 명랑하구마.

 

당시 고속버스는 지금의 파일럿과 스튜어디스와 맞먹을 만큼의 엄청난 인기를 누린 직업이었다. 시험도 어려웠고 임금도 적지 않아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당시 그레에하운드 고속버는 화장실까지 갖춘 버스라고 광고했다. 차량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노래에 나오는 버스안내양과는 거리가 있다.

 

1950년대 버스는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버스가 아니다. 먼지 풀풀 나는 신작로를 달리는 버스는 느릿느릿한데다 가다가 멈추기는 기본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탔다. 사람들이 많다보니 정리?가 안되어 다른 사람들이 타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차장'이다. 종 안내양으로 표기되지만 정식 명칭은 차장이다.

자동문이 아니었기에 차장은 항상 문앞에 서서 문을 열고 닫았다. 사람들이 다타면 차벽을 세게 치면서 '오라이'를 소리질렀다. 역사적으로 1961년 6월 17일 교통부 장관명으로 여차장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후 시내버스과 고속버스 등에 확대되면서 안내양으로 명칭이 바뀐다.  마지막 버스 안내양은 1989년 4월 김포교통 소속 130번 버스에서 근부하던 38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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