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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가요

방랑시인김삿갓 / 방랑 부르스

by Ἀμφίων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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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방랑 부르스

 

  • 발매일 1955년
  • 제작사 신신레코드
  • 앨범유형 스플릿
  • 앨범번호 5353, 5358

 

명국환 방랑시인 김삿갓

 

SIDE A

방랑시인 김삿갓명국환 / 김문응 / 전오승 / 전오승

 

SIDE B

방랑 부르스 / 송민도 / 김운하 / 전오승 / 전오승

 

 

[방랑시인 김삿갓 가사]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튼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바랑에 지치였나 사랑에 지치였나
개나리 봇짐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 해든가
석양 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명국환  <방랑시인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은 동명 이곡으로 반야월 작사 고봉산 작곡의 노래가 있다. 전혀 다른 곡이다. 트로트의 역사를 조금 아는 이들이 우리나라의 트로트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제외하고는 1930년대 이후에 정착이 된 노래의 틀이다. <목포의 눈물>1935년에 발매되었으니 그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로트는 우리나라의 신민요와 일본의 엔카가 혼합되어 우리나라의 만의 특유한 정서가 합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노래이다. 트로트가 가장 사랑을 받았던 시기는 1950-70년대까지이다. 1980년대부터 포크 등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의 장르와 유입되면서 분화되었다.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1950년대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노래 중의 하나다. 1950년대는 참으로 비극적인 시대다. 잠깐 역사를 잊을 수 있지만 1950625. 일요일 새벽 북한은 남한은 무력으로 침공했다. 그로 인해 3년의 기나긴 전쟁이 이어졌고, 다시 나라는 휴전 헙정이 되고, 남북한은 특히 남한은 초토화가 되었다.

 

그럼 일반 시민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야말로 떠돌이 생활이었다. 전쟁 관련 노래에서 드러나지만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을 온 이들은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해야 했고, 가족을 잃고 돌아갈 곳도 없어진 이들이 많다. 그들에겐 허무와 상실이 깊이 자리한다. 전쟁 후 많은 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들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홀로 남겨진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이것이 싫어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이들이 많다.

 

성공회대 교수인 이준희는 1950년대 트로트의 장조화 그리고 도추모노(道中物)의 연관상을 들여다본다. 그는 논문에서 도추모노 그러니까 방랑의 이야기가 일본의 야쿠자의 삶에서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하지만 일제 말기의 우리나라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후 육이오는 더욱 그러한 떠돌이 생활을 가시화한다.

 

결국 1940년 무렵 트로트의 장조화가 크게 부각된 것은 일본 대중음악 유행 사조가 시차를 두고 선택적으로 수용되었던 당대 한국 대중음악의 전개 과정 중 도추모노의 일부가 직접

적이고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슷한 노래노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1940년)이 있다.

 

[출처 이준희 논문]

 

1940~50년대 '트로트'의 확장: 장조화(長調化)의 도입과 변용 : Expansion of Trot in the 40s and 50s: Introduction and Transformation of Major-sc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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