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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가요/지역노래

부산 관련 노래와 대중가요

by Ἀμφίων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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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관련 노래

오늘은 부산 관련 노래로 정리해 봤습니다. 부산의 역사를 여기사 다 이야기할 수도, 할 필요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산은 지금의 부산과는 개념이 약간 다릅니다. 부산은 조선시대까지 부산진을 말했고, 동래와는 따로 구분되었습니다. 동래는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지금의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이자 용어였습니다. 일제강점기시절을 지나면서 동래는 부산의 일부로 편입되고 부산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됩니다. 부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도시로서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부산에 관한 노래는 일제강점기 직적부터 시작해 한국전쟁 이후를 정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가능한 년도별로 정리했지만 그렇지 못한 곡도 있습니다. 년도가 불확실한 곡은 비슷한 년도나 가장 하단에 따로 넣었습니다. 년도 / 노래 / 가수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부산에 관한 노래는 방대하기 때문에 시시 때때로 추가 수정됩니다. 각 노래의 가라와 배경 등은 노래별로 구분했으니 참조 바랍니다. 

 

글 읽기 전에 먼저 송가인의 <용두산 엘레지>부터 듣고 시작합니다. 정말 최곱니다.

 

-1930년대

1930년대와 40년대는 일제강점기 시절이라 부산 노래가 없을 것 같지만 당시 해운대는 일본인들에게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온천장 역시 일본인들에의해 만들어진 온천입니다. 하지만 당시 부산관련 노래들은 '마도로스'라는 단어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1932년 낙동강 칠백 리/김용환
1933년 마도로스의 노래/강석연
1936년 조선팔경가/선우일선
       정열의 마도로스/백석정
       마도로스의 꿈/이난영
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장세정
       눈물의 경부선/남일연
1937년 마도로스의 노래/설도식
1939년 마도로스 수기/백년설
       애상의 마도로스/이규남

 

부산관련 노래에는 부산항에 관한 가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부산은 국내에서 가장 큰 항구로서의 다양한 부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항과 관련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부산항 부두 숫자와 이름 역사

부산항 제1부두 부산광역시 중구 충장대로 24 (중앙동4가) 60년대 이후 노래에는 3부두가 등장하는데 가끔 제1부두가 등장한다. 일반사람들은 부산항만 알거나.. 좀더 자세히 하는 사람

old-music.tistory.com

 

-1940년대


1940년 


 마도로스의 발길/최규엽
마도로스 일기/이규남
마도로스 파이프/현정남

울며 헤진 부산항/남인수

 

1941년 

마도로스 박/백년설
청춘항구/남인수

 

1949년 

부산 부루스/이숙희

-1950년대

1950년대는 한국전쟁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부산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북한에 의해 침략당하지 않은 곳이라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 온 곳입니다. 현재의 부산은 실제로 한국전쟁 이후에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피난민들이 거처할 곳이 없어 산으로 텐트를 치며 살게 되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1952년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1953년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추억의 부산부두/고대원

함경도 사나이/손인호

 

부산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노래 가운데 하나가 남인수의 <부산 정거장>과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일 겁니다.

 

 

 

1954년

 

경상도 아가씨/박재홍
고향의 그림자/남인수


1955년 

 

마음의 부산항/허민
       온천 엘레지/변강복
       한많은 제2송도/배영준
       추억의 40계단/한정무
       1956년 이별의 부산항/손인호
       이별의 인천항/박경원
       고달픈 청춘/남백송
       이름없는 조각배/박재홍
       한많은 오륙도/차은희
       마음의 부산항/허민
       다방아가씨/허민


1957년 마도로스 부르스/안다성
       동백꽃 일기/손인호
       여수의 부산항구/손인호
       부산행진곡/방운아


1958년

 

그대는 바람같이/현인

그대는 바람같이/현인

끊어진 영도다리/박재홍

남포동 마도로스/원희영

마음의 부산항/손인호

마음의 이별/백야성

송도의 밤/송민도

애수의 부산항구/손인호

온천의 하룻밤/신해성

왜 왔느냐/백야성

원한의 북행열차/정향

3부두/윤일로

추억의 부산항/손인호

해운대 엘레지/손인호

향수의 부산항구/손인호

홍등가의 여인/박신자


1959년 

항구의 사랑/윤일로
추억의 영도다리/윤일로
청춘 마도로스/성일
부산역 이별/방운아
마도로스 순정/최갑석

 

 

부산의 동광동 소재 인쇄골목, 지금은 쇠락하여 규모가 작다.

 

-1960년대

1960년대로 들어서면 기존의 마도로스와 전쟁이 뒤섞여 있지만 점점 '사랑'이란 단어가 늘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60년대 이후 부산은 새마을 운동과 공업화로 인해 각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별과 사랑, 그리고 고향이란 단어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60년대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부산 분위기가 바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60년 

 

마도로스 부기/백야성
영도다리비가/박재홍
이별의 부산항/손인호
갈매기 사랑/손인호
청춘항구/김길순
그리워라 부산항/최갑석


1961년 

잘 있거라 부산항/백야성
       관광버스 여차장/차은희
       아메리칸 마도로스/고봉산
       마도로스 주장/김선영
       눈물의 영도다리/백야성
       울고넘는 영도다리/시민철
       못다핀 사랑/최갑석
       연락선 나그네/최갑석
       희망의 등대/남신
       화류계 여자지만/시민철
       내 사랑 희야/윤일로
       로맨스 항로/시민철


1962년 

 

부산의 나이트클럽/후랑크백
       한많은 해운대/후랑크백
       네온가 10번지/김영애
       금순의 노래(영화 '굳세어라 금순아' 주제곡)/황금심
       부산 엘레지/방운아
       항구의 영번지/백야성
       남행열차/남상규
       항구의 5분전 12시/남상규
       휘파람 마도로스/백야성
       항구의 트위스트/백야성
       마도로스 청춘/신해성
       부산 마도로스/김용만
       춤추는 남포동/김용만
       브라질 이민선/유인수
       슬픈 기타/임화춘


1963년 

 

로터리의 밤/후랑크백
       울리는 야간열차/반야월
       해운대 소야곡/남정일(남국인)
       송도 엘레지/유인수
       마도로스 삼총사/백야성
       왈순아지매/백야성&김용만
       낙동강 칠백 리/이인권
       항구의 바카본드(방랑자라는 뜻)/방태원


1964년 

 

동백 아가씨/이미자
       마도로스 박/오기택
       마도로스 사랑/백야성
       첫사랑 마도로스/남일해
       밤비의 정거장/백야성
       저무는 해운대/김태수
       잘있거라 경상도/시민철
       남포동 네거리/남상규
       용두산 엘레지/고봉산 (이 노래를 다시 불렀을 때에는 '추억의 용두산'으로 개명)/
       부산의 하룻밤/최갑석
       남포동 밤 0시/고봉산
       남포동 부기/고봉산
       부산항 제2부두/오기택
       이별의 제3부두/최숙자


1965년 

 

꿈속의 부산항/이미자
낙동강 피리 소리/박명애
남포동 야곡/안다성
돌아온 부산항구/백야성
마도로스 센터/백야성
무정의 40계단/최희준 (영화주제가 신성일 황정순 장동휘 주연)
부산은 내고향/손인호
비에 젖은 남포동/이경희·박가연
영도다리/명국환
온천장 엘레지/서원영
이별의 영도다리/김희수
제2부두 갈매기/하춘화
쾌지나 칭칭나네/김상국
태종대 엘레지/김광남

 


1966년 

울지마라 부산항/이미자
       비나리는 부산항구/지석현
       비 내리는 제2부두/황금자
       한 많은 제2부두/임화춘
       온천장 엘레지/백민우
       온천장 일야/남강수
       온천장 소야곡/이미자
       영도 아가씨/최은주
       선창가의 처녀/남미랑
       다대포 아가씨/조계숙
       비 내리는 남포동/백야성
       낙동강 처녀/박가연
       남포동 밤 11시/신해성
       남포동의 밤/남일해
       추억의 부르스/박충남
       아빠는 마도로스/하춘화
       찾아온 제1부두/진송남



1967년 

 

낙동강 아가씨/조미미
남포동 소야곡/태일

남포동 야곡 / 안다성 / 1967년

내가돌아온부두 / 작사미상, 작곡 황하룡  노래 김두곤 
눈물의 구포다리/이갑돈
다대포 처녀/이미자
동백섬 옛 노래/윤성아
들지 않는 영도다리/여운
미남 마도로스/최숙자
밤깊은남포동 / 작사:미상,작곡:황하룡 김두곤 노래 

밤깊은남포동 / 작사:미상,작곡:황하룡 김두곤 노래 

 

부산유정/옥금옥
송도의 달밤/박철로
송도의 하룻밤/김종기
실비 내리는 부두가/오민자
안개낀 부산항/남일
안개낀 오륙도/최경민
영도의 달밤/진만일
울며 헤어진 용두산/성가일
이별의 항구/태현철(현철)
잠들은 영도다리/이성남
추억의 동백섬/태일
한많은 오륙도/전금자
항구 아가씨/김유선


1968년 

 

떠나가는 경부선/이상열
뱃고동 소리/최정자
비내리는 동백섬/이미자
송도 배사공/윤선영
슬픈 소문/남진
애수의 온천장/윤은섭
이별의 영도다리/이상열
찾아온 해운대/문주란

 


1969년

 

내 고향 다대포/고신자
부산역 이별/장고

-1970년대

1970년대의 부산은 근대화의 물결로 인해 요동치는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가 되면 부산이 주도하던 유행의 물결은 서울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70년대까지 전국의 새로운 패션 문화를 부산이 주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부산은 항구도시로서 선진문물이 가장 많이, 가장 먼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도권은 80년대 중반에 서울에 빼앗기기는 하지만 부산은 명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은 일반인은 꿈도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해외여행 자율화는 김영삼 대통령 때였습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선진국의 문물은대부분 일본의 것이거나 일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보니 부산은 일본의 첫 항구이자 근접한 곳이었기에 새로운 유행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70년대까지 부산의 중심은 중앙동, 남포동과 충무동 근방이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로 들어서면서 점점 서면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서면은 온전히 차지하지 못하고 90년대 해운대 신도시 들어서면서 해운대로 양분됩니다. 

70년대 와 2010년대 서면 교차로 개금방향

 

70년대 노래들은 대체로 남포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점차 해운대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 해외여행 자율화가 있기 전 신혼 여행은 부산 해운대와 송도해수욕장이었습니다. 1970년의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최장 고속도로인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는 점입니다.(정확하게는 1969년 12월 29일) 77년에 발표한 혜은이의 <뛰뛰빵빵>에 고속도로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면 노래를 듣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1970년 

 

해운대 연가/신진아
해운대야 말해다오/신가야
해운대의 밤/선우영아
천리무정/신숙자
정다운 다대포구/김세레나
비 내리는 남포동/이규항
남포동 거리/이란
이별의 제2부두/김수동
황혼의 제3부두/문주란

 

1971년 

 

그님은 마도로스/송춘희
남포동 엘레지/유진설
밤 깊은 부산역/안세건
비내리는 용두산/박일남
추억의 해운대/태현철(지금의 현철)
팔도유람/서수남·하청일
해운대/김일하
현해탄을 건너올 때/은방울자매


1972년 

여수의 부산항구/손인호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원곡:1970년 김성술 사, 황선우 곡 '돌아와요 충무항')

 

1973년 

내 고향 남쪽 항구/이주희
비 오는 부산역/김창욱
천생연분/김상범

 

1974년

동백섬 사랑/정진희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파도야 말해다오/이상열
부산항 제3부두/최안순


1977년 

다시 찾은 부산항/나지훈

뛰뛰빵빵/혜은이


1978년 

오륙도/김상진

남포동 부르스/김동아
부산이여 안녕/이예나


1979년 

추억의 남포동/홍세민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1980년대


1980년 

영도의 달밤/김동아
부산항 제3부두/김미성


1981년 

추억의 태종대/윤중호
오륙도를 잊었나요/김환
제3부두/이윤호


1982년 

부산갈매기/문성재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버금가는 부산을 대표하는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입니다. 아마 야구 때문에 더 유명해진 것은 아닌지... 롯데... 거참.. 맨날 지면서도 지독히 야구를 사랑하는 부산 사람들 때문에 먹고 사는 롯데... 우리나라 기업인지 일본기업인지 헤갈리는 기업....


1983년

자갈치 아지매/나훈아

 

1984년

부산찬가/윤시내
오륙도/김계은·라미숙
남포동 이야기/권미경

 

1985년

동백섬 그 사람/구하나
해운대 연가/이유진

 

1986년

마흔 살 되는 해는/이동원

자갈치 룸바/은방울자매

 

1987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심수봉(이 노래는 부산이 아닌 인천항을 배경으로 한 노래임)
오륙도 친구/박중래
오륙도/박희선

 

1988년

남포동 부루스/심수봉

용두산 엘레지/고봉산


1989년 

부산항 제3부두/계은숙

해운대에서/여운
해운대 부루스/전계현
팔도 아줌마/문희옥 

여운 <해운대에서>


-1990년대

1990년대 부산은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 강합니다. 되돌아보면 참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91년부터 제가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부산은 항구도시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공단이 곧 부산 자체였습니다. 부산은 항구라는 말은 실제로 부산에 살아본 사람에게는 어색한 표현입니다. 부산은 수많은 공단으로 이루어진 산업도시입니다. 장림공단을 비롯해, 사하공단, 사상공단, 금사공단을 비롯해, 개금과 북구, 남구 할 것이 모두 공단 지역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부산의 많은 공단들이 서서히 빠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동남아와 중국으로 특히 많이 빠져 나갔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금사공단이었습니다. 금사 공단이 자리한 금사동과 서동에 관한 이야기도 있네요. 

주도권을 완전히 서울에 잃은 시기이기도하고, 부산이 산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의 전환이 서서히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90년대 부산을 노래한 곡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변화기의 부산으로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탓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1990년 

항구의 나그네/설운도
다대포의 꿈/설운도
해운대/박용진


1992년 

부산항구/김지노


1993년 

자갈치찬가/김상국

자갈치 아지매/김상국

잃어버린 용두산/이재영


1996년 

태종대의 밤/이호섭

-2000년대

2000년 내 사랑 부산항/해와달
2002년 와그라노/강산에
2003년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나훈아
       아름다운 해운대/설운도
       청사포/최백호
2004년 춘자야/설운도
2005년 그때 그 부산/김장수
       해운대 연가/전철
2007년 청사포의 밤/백련화
       자갈치 아저매/정희라
2009년 미스터 자이언츠/Various Artists
       부산에서 /MC 스나이퍼

-2010년대

2010년

파도이야기 /리오케이코아


2011년 

구포나루터/현철 (부산 북구청 기획)
부산발/마에다유키
서울 부산 428KM /바비빌
부산에 눈이 와요/토리
자취방 블루스/야비한순한양
두근두근해/베이비부
해운대/케이준
부산/JTONG
부산여자/비


2012년 

Homeground/팬텀
부산바캉스/스컬,하하
돼지국밥/클로버


2013년 부산 / 아루앤플
2014년 해운대/바이브
2017년 이별없는 부산정거장 / 현숙
2018년 부산아가씨 / 장태희

 


문서발행일 2020-12-16 10:51

1차 수정일 2021-03-29

2차 수정일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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